"국방 반도체 해외 의존도 98.9%... 실전에서 '전력 공백' 불가피"
[한국일보-한국국방기술학회 포럼]
무기체계 혁신 선도하는 '국방 반도체'
국내에는 설계·제조·생산 인프라 없어
국산 있어야 기능제한·수출규제 피해
산·학·연 함께 생태계 구축해 자립화를

한국국방기술학회가 주최하고 한국일보가 미디어파트너로 참여한 국방기술 혁신 포럼이 2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이병형홀에서 열리고 있다. 최주연 기자
우리나라 국방 반도체의 해외 의존도가 98.9%에 달해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국가 안보에 큰 공백이 생길 거라는 우려가 나왔다. 개발과 생산, 공급까지 이어지는 국방 반도체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한국국방기술학회가 주최하고 한국일보가 미디어 파트너로 참여해 2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국방 분야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주제로 열린 ‘국방기술 혁신 포럼’에 모인 전문가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국방 반도체는 상업용 반도체와 달리 무기체계와 군용 장비, 통신 시스템, 레이더, 위성, 미사일 등에 쓰여 고도의 안정성과 신뢰성이 요구된다. 다양한 첨단 무기체계가 사용되는 현대전에서 군사 혁신을 선도하는 핵심 축이다.

2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국방기술 혁신 포럼에 참석한 박일원 육군본부 군사혁신차장이 'AI 과학기술 기반, 국방 반도체'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박일원 육군본부 군사혁신처장은 “재래식 전장은 무기의 기동성과 힘이 주도했다면, 미래 전쟁은 국방 반도체 수천~수만 종이 적용되는 AI가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FPV 드론(조종자가 드론에 탑재된 카메라의 시점으로 실시간 화면을 보면서 통제)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아이언돔(요격 미사일 시스템) 등이 모두 국방 반도체와 결합된 무기라는 것이다.
박 처장은 "육군도 이런 흐름에 맞춰 디지털 전투체계 혁신 프로젝트 ‘아미 타이거(Army TIGER)’를 추진 중”이라면서 “모든 부대를 아미 타이거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아미 타이거는 디지털과 AI, 로봇, 드론,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전투를 벌이는 군대를 말한다.
2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국방기술 혁신 포럼에 참석한 이형진 전) 방위사업청 국방반도체 TF단장이 '국방 반도체 추진 현황 및 발전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이 같은 전환에 국방 반도체가 필수지만, 현재 98.9%는 해외에서 수입된다. 그중 85%가 미국에서 도입되는데, 미국은 국방 반도체 칩을 설계할 뿐 생산은 TSMC가 맡는다. 이형진 전) 방위사업청 국방반도체 TF단장은 중국과 대만 간 지정학적 불안이 고조될 경우 우리나라의 국방 반도체 수급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거라고 우려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반도체 생산국이지만 그건 메모리 반도체에 국한된다. 국방 반도체는 시스템 반도체인데, 국내엔 설계·제조·생산에 이르는 인프라가 없다”고 이 단장은 지적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이 러시아를 향한 반도체 수출을 전면 금지하면서 러시아는 무기 수급에 직격탄을 맞았다. 자국 내에 무기체계 생산 인프라는 많았지만, 정작 국방 반도체를 만들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탱크를 생산하는 러시아 기업들이 전쟁 중에 폐업까지 했다고 이 단장은 전했다.

2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국방기술 혁신 포럼에 참석한 백동현 중앙대학교 교수가 '국방 반도체 기술 및 산업 발전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백동현 중앙대 교수는 국방 반도체 자립은 기능적으로도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시스템 구조는 핵심 반도체에 의해 결정되는데, 외산 국방 반도체의 경우 보안 문제 때문에 일부 기능들은 사용에 제한이 걸려 있다는 것이다. “국내 기술로 국방 반도체를 개발하면 기능 제한이 없고, 시스템 최적화를 위해 기능을 추가하거나 제거하기도 용이하다”면서 “생산 단가도 낮출 수 있다”고 백 교수는 설명했다.
해외 국방 반도체는 수출 규제 및 제재도 많다. 가령 우리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에 미국산 국방 반도체가 탑재된 무기를 수출하려면 미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백 교수는 “국방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면 무기체계의 핵심 기술까지 독립이 가능하고, 단종 문제없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2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국방기술 혁신 포럼에 참석한 박매훈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무인복합연구센터장이 'AI 반도체의 무기체계 적용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이는 방산기업에도 사활이 걸린 문제다. 박매훈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무인복합연구센터장은 “국방 반도체가 특화하지 않으면 민수용 반도체를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방 반도체가 신뢰성과 보안성, 안전성 등이 확보돼야 기업이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센터장은 “국방 반도체의 성능 고도화와 무기체계 탑재를 통한 적용성 검증을 병행 추진해야 한다”면서 “국방 반도체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를 탑재하는 모듈부터 자립화를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영욱(오른쪽 여섯 번째) 한국국방기술학회 이사장과 임기훈 국방대 총장(일곱 번째)을 비롯한 국방기술 분야 각계 전문가들이 2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국방기술 혁신 포럼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전쟁 양상이 급변하고 안보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학계와 업계의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박영욱 한국국방기술학회 이사장은 “국방 및 우주개발 반도체 소사이어티 창립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산·학·연이 모이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원문 보기]